개발자의 쉬어가는 이야기: 블리자드가 한쪽 진영만 편애한다고?

개발팀의 쉬어가는 이야기
November 28th 4:32am에 등록 게시자: Fargo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초기의 목표 중 하나는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건강한 대치관계 형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세계관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서로 다른 진영간의 대화를 금지하였습니다. 플레이어 간 전투가 전적으로 허용된 서버들이 도입되었습니다. 전장과 퀘스트 중심지는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상징물로 꾸며졌습니다. 개발팀에서는 각자의 진영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전우들과의 진정한 전우애를 키우고 싶었습니다.

플레이어 여러분이 자신의 품위를 잃더라도 자기 진영에 대한 자부심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것이 개발팀의 목표였습니다. 언젠가 저녁 식사 후, 아내와 함께 차를 몰고 집에 가는 길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내는 갑자기 창밖으로 몸을 쑥 내밀고 경적을 시끄럽게 울리고는, 호드 하키 셔츠를 입고 식당 밖에 서 있던 어떤 남자에게 “호드를 위하여!”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친구는 아마 자기가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도 몰랐을 겁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타이어에서 연기가 날 만큼 빠른 속도로 도망쳤는데, 아마 그 사람은 정말로 깜짝 놀랐을 겁니다. 이게 바로 개발팀의 목표였습니다.

이제 지금 게임 속에서 진행 중인 이야기를 살펴보면, 얼라이언스와 호드 플레이어들이 서로의 득실을 따지는 모습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대격변이 세계를 뿌리째 뒤흔들었을 무렵, 두 진영이 서로의 영토를 얼마나 빼았고 빼앗겼는지 보여주는 지도와 도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남녘해안에 역병이 퍼졌다고? 타우라조 야영지가 불탔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양 진영에서 들려오는 불만 섞인 목소리를 들어보면, 모두 블리자드가 두 진영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또 이런 생각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바로 어느 한쪽 진영의 세력이 약해지고 있다면, 블리자드가 다른 한쪽을 편애한다는 거죠.

과연 그럴까요?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세계

어쩌면 개발팀에서 한쪽만 편애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제로스의 역사를 잠깐 훑어보기만 해도, 여러 세대에 걸쳐 개발팀에서는 얼라이언스를 괴롭혀왔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워크래프트 I에서는 오크가 스톰윈드를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워크래프트 III에서는 로데론에 역병이 퍼져 로데론 시민들이 넋 나간 언데드 무리가 되었습니다. 하이 엘프 연합은 스컬지에게 습격당해 수도를 잃었고, 그 힘의 근원마저 오염되고 말았습니다. (이 두 가지 끔찍한 참상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호드를 안식처로 삼았습니다.) 노움의 수도는 방사능에 오염되었습니다. 드워프 왕국은 끔찍한 내전에 휘말렸습니다. 얼라이언스가 아직도 남아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인간들은 그나마 괜찮은 편입니다. 적어도 인간에겐 아직 고향 행성이 남아 있습니다. 오크들은 들끓는 악마들에게 고향을 빼앗겼습니다. 오크 종족 대부분이 악마의 피로 오염되었습니다. 워크래프트 II의 막바지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일부 오크는 낯선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패배하고, 좌절을 겪고, 약화되어 인간의 포로 수용소에 감금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때 오크 토론장이 없었던 게 천만다행입니다! 그 분노가 어땠을지 상상해 보세요.

사실, 워크래프트의 세계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일은 마치 전범 재판과도 같습니다. 제국이 무너지고, 지도자가 타락하고, 주민들은 학살당하고, 한 문명이(대부분 그 힘이 절정에 달했을 때) 폐허가 됩니다…. 워크래프트는 어두운 세계입니다. 드레나이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개발팀에서는 드레나이의 고향을 없애버렸을 뿐 아니라 타락하지 않은 마지막 후손들까지 수만 년 동안 괴롭혔습니다. 우리는 정말 잔인한 사람들입니다. 워크래프트의 이야기 팀처럼 남 괴롭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처음 봅니다.

고통은 워크래프트의 이야기를 이끄는 원동력입니다. 왜 그럴까요?

영웅 공장

이곳 블리자드에서는 워크래프트라는 가상의 이야기를 가지고 무엇을 하려는지에 대한 논의가 자주 펼쳐집니다. “영웅 공장”이라는 말은 블리자드의 모든 작품들에 걸쳐 자주 등장합니다. 개발팀에서는 플레이어 여러분이 모두 영웅이 된 기분을 느꼈으면 합니다.

영웅을 만들어내는 재료는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통과 악이 걸죽하게 뒤섞인 모습에 가깝습니다. 영웅은 어둠 속에서 태어납니다. 길을 밝혀줄 누군가가 간절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영웅을 애타게 부르는 곳은 불공평한 세상입니다. 혼돈에 질서를, 압제에 정의를 가져오는 것이 영웅의 소임입니다. 아제로스가 불공평한 세계라는 사실도 당연합니다. 끔찍하게 불공평한 세상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겁니다.

이야기 흐름과 오크에 대하여

바로 지금, 그리고 당분간은 양 진영이 불공평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더욱 다채로운 이야기가 더 오랜 기간 펼쳐질 것이며, 개발팀에서 대격변을 준비하던 때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새로운 생각을 아제로스의 이야기에 도입할 수 있습니다. 아제로스의 여러 지도자들이 영웅적이거나 비열한 온갖 이야기에 휘말리고, 그와 함께 양 진영이 흥망성쇄를 겪는 모습은 오랜 기간 게임을 즐긴 플레이어 여러분께는 어떤 선물과도 같을 것입니다.

각 진영의 지도자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더 말씀드리면, 개발팀에서 반성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 모두가 게임 속의 이야기에서 자신만의 영웅과 만날 수 있게 해드려야 했다는 점입니다. 워크래프트의 세계를 만들면서, 개발팀에서는 종종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어떤 한 진영에 속한 인물이 아니라 “세계” 공통의 인물이라고 여기는 일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대격변의 사건들은 워크래프트 III 이후 오그리마에서 비교적 한가하게 지내던 스랄의 이야기가 대폭 진행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대족장의 자리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주술사라는 신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대족장의 망토를 벗어던졌고, 이제 여러분의 도움을 받아 데스윙을 처치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에는 항상 대가가 있습니다. 스랄도 뭔가를 희생했지요.

호드 역시 나름 굴곡의 역사를 겪었습니다. 피폐해진 오크 피난민들이 칼림도어 해안에 가까스로 도착하여 새로운 수도를 세우기로 결정하고, 이후 호드의 여러 종족은 하나로 힘을 합쳤습니다. 이제 리치 왕의 지배에서 벗어난 포세이큰은 국경 경비를 강화했습니다. 타우렌은 정착할 수 있는 수도를 세웠습니다. 한때 멀록의 공격으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던 검은창 트롤도 다시 힘을 합쳐 수도를 세웠습니다. 블러드 엘프들은 고향을 잃었지만 살아남아, 타락한 지도자를 뒤로 하고 태양샘을 탈환했습니다. 호드는 분명히 상승 기류를 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순간, 아제로스의 가장 강력한 필멸자 중 하나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떠났습니다. 스랄이 잠시 이야기에서 비켜 섰습니다. 이제 가로쉬 헬스크림이 호드의 임무를 정의합니다. 그에게 대족장 자리를 맡긴 결정이 이제 다시 스랄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얼라이언스만 고집하는 플레이어라면, 스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에서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스랄이 “저쪽 편”이라고 생각된다면, 지난 몇 년간 스랄의 여정은 “여러분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설령 스랄의 실수 때문에 게임 속 전 세계가 파멸에 이를 수 있다고 하더라도요. 일리가 있습니다. 대격변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스랄의 여정을 따라가고 나면 약속 드리건대 개발팀에서 그 여파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양쪽 진영의 다른 캐릭터들도 만나보실 수 있을 겁니다.

가로쉬 헬스크림은 호드가 칼림도어를 평정한다는 야망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야망은 얼라이언스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후에야 충족될 수 있습니다. 가로쉬는 얼라이언스 그 누구의 예상도 뛰어넘는 치밀함을 지니고 있으며,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심지어 호드의 일원을 희생시키더라도)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야망은 세계를 혼돈으로 밀어넣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위기 속에서, 얼라이언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단결해야 합니다. 블리즈컨에서 열린 세계관 토론회에서는 판다리아의 안개와 그 이후 패치에서 주요 얼라이언스 캐릭터들이 주목받는 일이 더 많아질 거라 답변드렸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얼라이언스의 영웅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주목을 받겠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입니다.

상황이 좋아지기 전에, 우선 지금보다 더 악화될 겁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요. 하지만 이게 바로 좋은 소식입니다. 부조리한 세계에 정의를 가져오려면, 더 많은 영웅이 태어나야 한다는 의미이니까요. 바로 여러분 모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세계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순진한 결말은 없습니다. 그건 블리자드답지 않습니다.

데이브 “파고” 코삭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수석 퀘스트 디자이너입니다. 그는 게임 속 이야기와 워크래프트 세계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일을 맡고 있으며, 취미로 새끼곰을 트램펄린에 집어던지는 일을 즐깁니다. 자칫하면 균형을 잃기 쉬운 일이지만, 데이브는 오래 전의 미식 축구 게임에서 능숙한 쿼터백이 보여주던 것처럼, 흔들리지 않는 의지로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